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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oho9811
제목 상처받은 내면 아이와 수치심
작성일자 2018-12-06
조회수 245

상처받은 내면 아이

 

우리 자신의 내적 아이(Inner Child)를 발견하고, 부둥켜 안도록 도와주는 내적 아이 치유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실시되어온 내적 치유 프로그램과 심리 치료 중에서도 가장 빠르고, 강력하며, 치유와 성장에 결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상처 입은 내면아이(The Wounded Inner Child)는 우리가 갖고 있는 믿음체계의 가장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 각 발달 시기와 단계로 돌아가 그 당시의 상처 입었던 내면 아이의 모습을 발견하며, 막혔던 슬픔을 쏟아내게 하고 함께 대화하며 부둥켜안는 '상처 입은 내적 아이의 치유'는 그 사람의 믿음체계의 핵심을 직접적으로 치유함으로써 가장 빠른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내적 아이 치유법은 과거에 실시되어온 심리 치료와는 다르며, 새롭고 중요한 치유의 도구이다.

내적 아이 치유사역은 참석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어린 시절에 '아직 미처 해결하지 못했던 슬픔'을 걷어낼 수 있도록 돕는데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슬픔들은 누군가로부터 버림받았던 기억으로부터 비롯됐거나, 혹은 모든 다른 종류의 학대들(신체적, 정신적, 성적, 영적학대 등) 때문이거나, 또는 어린 시절에 각 연령적 시기와 단계에서 자신들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 당연히 받아들여져야만 했던 욕구들이 무시되고, 거절당함으로 인해 초래되었거나, 역기능적인 가족 체계로부터 비롯된 얽히고 설킨 복잡한 장애물들이 그 원인일 수 있다.

내적 아이 치유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져야만 하고, 많은 시간을 쏟아야할 핵심적인 일은 참석자들이 '어린 시절의 발전적이며 의존적인 욕구들이 거절된 것을 슬퍼하는 일'이다. 이러한 단계적 접근 방법은 우리의 감정적 상처들을 치유하는데 있어서 가장 효과 있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각 단계와 시기를 구체적으로 되돌아보며 적절한 치유를 경험하는 것이 이 내적 아이 치유 작업의 독특성과 그 목표가 된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어린 시절의 각 시기에 따라 단계적으로 받아들여져야만 했던 지극히 정상적이며 당연한 의존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의존적인 욕구들이 충분히 채워지지 못했을 때,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처 입은 내적 아이'를 품은 채로 어른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어린 시절에 아이로서 당연히 경험하고 받아보았어야 할 무조건적인 사랑과 따뜻한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상처 입은 내적 아이를 가슴에 품은 채로 겉만 성장한 성인을 가리켜서 '성인아이'(Adult Child)라고 부른다.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계속 품고서 숨기면 숨길수록, 상처 입은 내면아이는 자신을 알아주고 받아들여 주지 않는 사실에 대항하여, 온갖 발작을 하며 울어 제치거나, 어떤 것에 대해 지나치게 반응, 반항하거나, 계속해서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에서 고통스럽고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즉, 가족관계(부모, 형제와 자매, 부부, 자녀와의 관계 등)에서, 예를 들면 극단적이고 고집이 센 병적인 부모 역할 등이나, 사람 의존 중독이나 혹은 다른 종류의 중독 (즉, 알콜, 섹스, 일, 종교, 스포츠, 인터넷, 도박, 분노중독 등) 증세 등을 나타내게 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자신이 어린 시절에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관심과 사랑 때문에 좌절당했던 것에 대한 슬픔을 가슴깊이 슬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억눌려 왔던 슬픔을 진정으로 슬퍼하게 되면 오랫동안 얼음처럼 얼어붙었던 슬픔이 녹아내리게 된다. 중요한 사실은 바로 이 슬픔의 양과 질이 치유의 과정 속에 있는 여러분의 위치와 직접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내적 아이의 치유의 승패는 참석자 자신이 그 치유과정을 통해서 얼마만큼 자신의 내면아이의 슬픔을 진정으로 슬퍼하였는가의 “내적 아이의 슬픔과의 동일성 여부”에 달려있는 것이다.

내적 아이 치유 작업의 마지막 단계에서 참석자에게 기대되는 것은 참석자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내면 아이를 끌어안게 되는 것'이다. 나는 여러분 자신이 하루 중 얼마의 시간을 내어서 여러분의 '내면 아이와의 대화'를 계속하게 되길 권면한다. 상처 입은 내면 아이를 발견하게 되고, 억눌려왔던 슬픔을 걷어내고, 부둥켜안을 수 있게 되면, 하나님께서 본래 우리에게 주셨던 놀라운 창조적 에너지가 생성되게 된다. 즉, 내면 아이와의 만남과 통합을 통해서 새로운 삶이 펼쳐지게 되는 데, 칼 융은 이러한 '본래의 아이'(The Natural Child)를 가리켜 '놀라운 아이'(Wonder Child)라고 불렀다.

어렸을 때의 갈등이 해결되지 않았을 때에 일생을 통해 그 갈등을 계속해서 반복하게 되며, 그 결과로서 신경성 질환과 치명적인 정신적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최초로 밝혀낸 사람은 Freud이다. 프로이드에 있어서는, '상처 입은 아이를 치료하는 일'은 참석자로 하여금 얼마만큼 '안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느냐'가 가장 핵심적인 것이다. 즉 치료란 치료사가 '안전한 환경'을 내담자에게 제공함으로써 내담자가 자신의 '상처 입은 내적 아이'를 드러내고, 채워지지 않았던 욕구들이 받아들여짐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치료사의 역할이란 곧, 이 '상처 입은 내적 아이' 의 '새로운 부모의 역할'을 맡게 됨을 의미했으며, 내면 아이가 끝내지 못했던 작업을 끝낼 수 있게 해 줌으로써 상처 입은 아이의 치유가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치료 방법은 치료사가 내담자의 치료를 위해 애쓰고 도운 내용이 결정적이고 중요한 만큼, 내담자는 더욱 더 애절하게 치료사에게 매달리게 되고 의존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한계성과 약점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대하는 '진정한 의미의 치유'란 '내담자 스스로가 자기 자신의 성숙한 힘을 사용하여 자신의 내면 아이를 돌보고 치유할 수 있도록 돕자'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서, 내 자신이 나의 내면 아이를 직접 접촉하고, 발견하며, 돌보며, 양육시킬 최고의 치료사인 것이다. 진정한 변화와 치유를 원한다면 나 스스로 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치유의 성공 여부는 온전히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 내 속에 있는 '성인 부분'(You Adult Self)을 일깨우며, 이 부분을 십분 활용하여 나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아야만 한다. 내 자신 속에 있는 성인 자신으로 하여금 나의 내면 아이가 끝내지 못했던 중요한 작업을 마칠 수 있도록 돕고, 보호해 주고, 후원해 주는 일은 나의 치유과정에서 가장 결정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1) 자신의 어린 시절의 발달 단계에 있어서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이 무엇인지 먼저 이해하라.
(2)그 특정 시기와 단계에 있어서 당신의 내면 아이의 욕구가 얼마만큼 만족되었는지를 발견하라. 즉, 각 연령적 시기와 발달 단계에서 아이였던 당신을 발견하라.
(3)구체적이고 정확하며 실제적인 방법으로 당신의 내면아이가 성장하고 양육하도록 도와라.
(4)당신의 내면 아이의 욕구를 들어주기 위한 건강한 방법들을 배우라.
(5)또한 내면 아이를 보호해 줄 수 있는 경계선을 세우라.

이 시점에서, 당신은 당신의 어린 시절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부모 역할을 시도하게 되는 것이다. 당신이 이 새로운 부모 역할을 배우게 되면, 이제는 더 이상 어렸을 때 부모가 당신에게 해주지 못했던 부모 역할을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하고 바라며 대리 욕구를 채우려 했던 모든 과거의 일들을 중단하게 될 것이다.

내적 아이 치유과정의 마지막은 상처 입은 아이가 치유되게 됨으로써 당신의 놀라운 아이가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이 놀라운 아이(Wonder Child)는 우리 인간의 가장 창조적이며 변혁적인 에너지의 근원이다. 바로 이 모습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자신의 독창적 존재의 발견이며, 하나님과 공동 창조자로서의 모습의 인식이고, 동시에 우리의 궁극적이고 가장 깊은 단계의 치유인 것이다.

여러분 모두가 자신의 내면 아이를 발견하고, 함께 대화하며, 공동 작업을 통해 영적 여정에서 자신의 내면 아이의 안내자가 되고, 승리자가 되는 놀라운 영적 여행을 이루기를 기도한다

 

 

 

모든 중독의 기초가 되는 뿌리 깊은 수치심


신경증적인 수치심은 모든 중독과 강박적 행동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내 입장에서의 강박적/중독의 행동에 관한 정의는 “순간의 만족을 얻기 위해 삶 전체를 희생시키는 정신적 행위”이다.


사람들은 중독으로 몰아가는 중심에 깔린 생각은 자신이 열등하고 불안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이 생각을 달래 보고자 일과 쇼핑 또는 도박을 통해 몰두하여 잠시 잊으면서 순간적인 만족을 구하려 든다. 모두 정도에서 넘어서서 일 중독자는 일에서, 알코올중독자는 술에서, 애정에 중독된 사람은 애정 행각에서 각자 즉각적인 위안을 얻으려 든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내면의 불만족을 보상받으려는 행위이며 이에 따른 결과는 오히려 그 전보다 더 비참해지며 수치심의 정도가 더 깊어질 뿐이다. 이는 마치 원점으로 돌아오는 순환고리와 같아 계속 반복되는 악순환에 수치심의 골만 깊어질 뿐이다.


중독은 내가 날 아무도 사랑해 주거나 받아주지 않는 외롭고 기댈 곳이 없는 존재라고 여기는 생각에서부터 출발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중독은 다른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기보다는 자기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다.


그래서 내가 만약 다이어트를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맛있는 것을 먹거나, 섹스를 하거나, 돈을 더 많이 벌거나, 일을 더 열심히 하면 속에서부터 울려오는 이 괴로운 소리-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싫어하는-가 줄어들거라 여기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수치심은 자신의 존재로부터 비롯한 생각을 행동으로써 보상하려 만들어 소위 ‘행위 지향적인 인간’을 만들어 낸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가치는 외부에 이루어 놓은 성취가 중요하지 내면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밖의 일에 열중하느라 안을 들여다 볼 시간이 없다는 게 맞는  말이다. 일단 어떤 행위로 일시적인 위안을 얻게 되면 중독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결국 중독이 되어 집착의 수준까지 되면 이제ㅐ 이런 행동들을 통해 내면의 불만족을 표출한다. 예를 들어 알코올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몰래 뭘 먹든지 아니면 섹스에 집착하든지 하는 것이다. 가장 흔한 증상은 알코올 중독, 신물 날 정도로 마구 먹는 것, 자위행위, 돈이 있으면 있는 대로 다 써버리는 것 등이다. 하지만 결과는 망가진 몸, 과체중, 의미 없는 섹스와 텅 빈 지갑이다.


그리고 이는 모두 수치심만 더 가중시킬 뿐이다. 더구나 수치심을 없애려고 밖으로 표출하는 행동은 인생을 송두리째 망치는 결과를 가져오기 쉽다.

* 수치심의 치유(존 브레드쇼 지음). p.33-34

 

남 돌봐주기와 도와주기


돕는 것 같이 보이는데 사실은 도움을 받는 사람이 수치를 느끼는 경우가 있다. 이 돌봐주는 역할은 가족시스템에서 흔하다. 그리고 사실 돌봐주는 사람은 남을 돌보는 게 아닌 항상 자신을 돌보고 있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을 못나고 결점 많은 존재로 느낀다면 그녀는 남을 도우려는 것으로 기분전환을 하려든다.


남을 돌볼 때 그녀는 자신이 좋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돌봄”의 목표는 돌봄 그 자체지 그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다. 이 돌봄은 자신이 무능하다는 느낌에서 벗어나려는 잘못된 방법이지만 그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을 안 좋게 생각하는 감정을 좋은 것으로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이렇듯 돌봄은 자신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마음에 대한 방어 전략이다. 남을 도와주는 행위는 범위를 넓혀 남을 구원하려는 것으로 옮겨가게 된다.

알코올 중독자가 만약 이런 배우자와 있게 되면 그는 도움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알코올중독에서 평생 동안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이런 부모가 종종 아이들을 돕거나 구원하려 들지만 이는 오직 부모 자신들만 위한 것이다.


아이들은 도움을 받으면서도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실패자의 느낌을 갖게 된다. 이런 남을 구원하겠다고 덤비는 것은 도둑질과 같다. 이런 일은 그들의 성취하는 힘과 그들 자신을 힘 있게 느끼려는 마음을 앗아가 결국에는 자신을 수치스럽게 여기도록 만든다.


* 수치심의 치유(존 브래드쇼) P. 140-141

 

 

부정과 환상에 묶이는 것


아마도 가장 기초적인 자기 방어는 부정일 것이다. 위협을 받는 앞에서 사람들은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부인하거나 아니면 그로 인해 상처받은 것을 부인하지 않으면 그 상황에 충격을 받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 로버트 피러스톤(Robert Firestone)이 프로이트의 부정에 관한 대목을 좀 더 정교화 시켰다. 그는 가장 기초적인 자아방어를 환상과 결속하는 거라 했다. 아이는 돌봐주는 부모가 자신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존재일 때 아이들은 환상과 결속된다. 역설적으로 아이는 더 많은 학대를 받을 수록 더욱 환상에 빠진다. 학대를 당하며 거기서 빠져 나올 수 없는 건 아이에게 수치심을 가장 많이 야기하며 아이를 큰 혼란에 빠지게 한다


학대는 닥치는 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아이에게는 무작위로 받는 쇼크와 같다. 그리고 학대는 자존감을 떨어뜨려서 수치심을 낳게 한다.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을 잃어버리면 잃어버릴수록 자신을 위해 선택하려는 기회와 변화는 점점 사라진다.


마침내 그는 선택 기회를 잃어버리고 학대자에게 매달리게 된다. 이제 환상 결속자(노예)는 학대자가 자신을 위해 있어 주고 보호해 주고 사랑해 준다는 환상에 빠지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사막의 신기루와 같다.

일단 환상 결속 장치가 되면 현실을 부정하며 자동적으로 의식하지 못하게 된다. 수년이 지난후 더 이상 현실적으로 위협하는 요소가 없어도 여전히 환상에 묶여 있는 것이다.

*수치심의 치유/존 브래드쇼. p.113

 

 

돌아가지 못하면 다시 되풀이 된다.

아이가 폭력을 당할 때는 그의 첫 반응은 화를 내며 우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에 더 많은 처벌이 돌아온다면 아이는 이것조차 억압해 버린다.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면서 학대자와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이 상처에 관한 기억을 억압한다.

나중에 이 단절되고 눌린 분노와 무력감, 혼란과 고통은 다른 사람에 대한 가공할 만한 범죄 행위로 또는 그 자신이 약물이나 매춘, 정신적 이상이나 자살을 함으로써 오히려 자신에게 화를 돌리기도 한다.

엘리스 밀러는 이에 대해 “누구도 자신이 당하고 있는 일에 자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그 행위를 되풀이하는 것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라고 단정 지었다.

우리 대부분의 부모가 정도는 심하지 않지만 이런 종류의 일들을 자녀에게 되풀이하고 있다.
가족치료 센터의 슬로건은 다음과 같다. “돌아가지 못하면 다시 되풀이된다”

* 수치심의 치유/존 브래드쇼/ p.168

 

 
사회적인 네트워크 찾기


숨김에서 빠져 나오는 최상의 길은 수치심을 주지 않는 사회 단체에 가입하는 것이다. 여기서 요구되는 것은 친밀감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다루어져야 하는데 이는 우리의 수치심이 본질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해로운 수치심은 자신의 깊은 비밀스러운 부분들에 대해 가면을 쓰고 숨기게 하고는 본질적으로 자신이 결점투성이라는 믿음을 구축하게 만든다.


자신이 너무나 끔찍하기에 감히 자기 내면을 들여다볼 생각도 못하고 남에게 말할 생각조차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고치는 길은 남에게 이를 노출시키고 평가를 받는 것뿐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신뢰하며 받아들여지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자신에 관한 잘못된 믿음을 고칠 수 있다.


이를 통해 자신이 그 정도로 나쁘지 않으며 어느 정도 사랑스럽고 받아 들여질만 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진실한 사랑은 치유하며 영적 성장을 하게 해준다. 만약 우리가 사랑을 받는데도 성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실한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실한 사랑은 무조건적이며 긍정적이다. 이런 사랑이 우리를 온전하게 해주며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받아들이게 한다. 온전해지기 위해 우리는 우리 안의 수치스런 구석과 분열된 부분을 재통합해야 한다.


버지니아 새티어는 우리가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을 때 일어나게 되는 5가지 자유에 대해 언급했는데 이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힘의 자유에 대해 말한 것이다. 이는 ‘인지할 수 있는 힘, 사랑할 수 있는 힘, 사랑할 수 있는 힘,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힘,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는 힘, 상상할 수 있는 힘’ 등이다.


우리가 자신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우리는 보고 듣지 말아야 된다는 생각, 듣기는 하지만 생각하거나 표현하지 말자는 마음, 생각하고 표현하기는 하지만 느끼지 말아야만 된다는 생각, 자유롭게 우리가 느끼기는 하지만 우리가 누구를 사랑해야 하며 저런 사람은 사랑하지 말아야 된다는 명제, 우리가 사랑하고픈 사람을 자유롭게 사랑하지만 이런 생각은 상상하지 말아야 된다는 결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조건 없이 사랑 받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질 때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렇게 자신을 받아들일 때 해로운 수치심은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의 힘이다. 자신을 받아들이므로 우리는 통일되고 우리의 힘이 중심에서 외부로 뻗어 나갈 수 있다.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혼란에 빠뜨리며 무너지게 한다.


이것은 우리가 내면에 있지 못하고 외부에서 우리를 가리는데 급급하다는 말이며 결국에는 이런 일에 온 힘을 다 써서 정작 세상을 대처해 나아갈 힘은 없는 것이다. 자기를 수용해야 온전한 기능을 하게 한다. 해로운 수치심이 인간 관계에서 발생된 것이므로 수치심을 치유할 수 있는 건강한 인간관계가 필요하다. 이 점이 중요하다.


수치심을 치유 받으려면 우리는 반드시 위험을 무릅쓰고 수치심을 주지 않는 관계를 찾아야 한다. 그 외에는 방도가 없다. 일단은 그룹에 들어가 대화나 교류를 통해 세부적인 작업에 들어가야 하지만 그 전에 사람들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정립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 수치심의 치유/존 브래드쇼/ p.180-181

 

 

많은 사람들이 심리치료 그룹이나 개인상담사에게서 도움을 찾을 수 있다. 그때 중요한 점 몇 가지 지침이 있다.


* 모임은 반드시 판단하거나 수치를 주는 그룹이 아니어야 한다. 일단 그룹에 들어가는 것을 감수했더라도 불편하게 느껴지거나 수치심이 자극되면 나와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라.


* 그 모음은 민주적이며 통제 받지 않는 곳이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진실된 모습을 보일 수 있어야 하며 서로 치아점이 받아들여져야 한다. 곧 이 부분이 수치심에 묶인 사람들이 겪어보지 못한 일인 것이다.


* 모임의 리더는 건강한 수치심의 소유자로 그/그녀가 수치심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 군다는 이야기가 아니라(통제, 완벽주의, 엄격함) 있는 그대로 행동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리더는 그 모임의 등대 같은 역할을 하면서 앞으로 자신이 어떤 모양으로 변하게 될지를 보여주는 사람인 것이다.


* 모든 수치심에 내재한 구성원들은 서로 접촉하거나 포옹하는데 있어서 신중해야 한다. 아무나 다가와 포옹하지 말고 사람의 경계선이 존중되어야 한다. 만약 신체적인 접촉이 당신에게 감당하기 힘든 것이라면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가만히 있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당신을 포옹하기 전에 당신의 동의를 얻고 당신도 누구를 포옹하기 전에 물어보는 것이 지켜져야 한다.


* 우리 중 상당수가 어린 시절 말을 배우기 전에 충분한 신체적 접촉이 없어서 수치심을 느끼고 있다. 말을 할 수 있는 시기 이전에 교감하는 일은 말이 아닌 접촉과 감싸 안음으로 교류하는 방법이 추천된다. 아기가 충분한 신체적 접촉이 없어 죽게 되는 현상을 가르쳐 “MIRASMUS"라 부른다. 마셀 게바(Marcel Geber)가 유엔 연구원으로 우간다에 있는 단백질 결핍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을 조사하러 갔을 때 그 아기들이 상황에 맞지 않게 놀랍도록 성장된 수준을 보고 매우 놀라워했다.


그 아기들은 엄마에게 끊임없이 안기고 포옹을 받았던 것 같다. 아기들의 몸은 계속 접촉되고 움직이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 최종적으로 모임은 모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그룹 내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사람들은 감정을 각자 자유롭고 공개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수치심은 분노를 제외한 모든 감정을 묶고 있으므로 일단 나타나면 격노하게 되고 감정이 이에 압도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은 이를 누그러뜨린다.


수치심이 모든 느낌을 묶고 있기에 정신적인 마비가 와서 느낌과 접촉하는 것이 처음에는 대단히 힘들다. 아마 당신은 두려움에 매번 압도당할지 모르겠다. 혼란스러울 것이고 어떤 때는 느낌을 드러내는 것이 안 좋게 여겨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감정이 마비되면 자신과 교류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나는 감정을 드러내고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는데 서두르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다. 이것은 역기능 가족에서 자라서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부모로부터 말하지 말라는 규칙을 배운 우리는 익숙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처음에는 좀 어색하고 두렵다. 아마 우리는 우리가 표현하는 감정들에 압도될지 모른다. 어떤 사람은 감정적인 일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지 모른다. 하지만 감정을 느끼는 것만으로 수치심을 감소시킨다는 것을 알라.


다른 사람과 감정을 나눈다는 것은 상처받기 쉬운 일이지만 그런 구체화 작업을 통해서 자신을 숨기는 일로부터 빠져 나오게 된다. 로버트 피어스톤은 그의 저서인 “환상에 묶여서”에서 인간은 진실 된 우정과 공동체 안에서 있어야 비로소 제 기능을 감당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아마도 이 반대는 거짓으로 연결된 가공된 환상에서 사는 것이다. 중독과 잘못된 관계는 자신의 내면 깊숙이 후퇴하여 생리적인 만족에 탐닉하게 만든다. 그런 삶은 인간의 삶이라 볼 수 없다. 오로지 공동체 안에서의 교류와 대화를 통해서만 진실 된 삶이 성장하고 자라날 수 있는 것이다.

* 수치심의 치유/존 브래드쇼/ p. 183-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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