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Community

자료실
작성자 boho9811
제목 대상관계---어린왕자를 통해서 보는
작성일자 2018-12-06
조회수 72
▶ 생텍쥐페리(1900-1944)에 대한 짧은 소개

생텍쥐페리는 프랑스 리옹(Lyons)에서 출생했다. 그는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1920년 징병으로 공군에 입대하여 조종사 훈련을 받았다. 제대 후 자동차공장 등 여러 직종을 전전하다가, 평범한 사회의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행동적인 인생을 개척하고자 1926년부터 위험이 뒤따르는 초기 우편비행 사업에 가담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군용기 조종사로 종군, 대전 말기에 정찰비행 중 행방불명이 되었다.

  네이버 인물 사전에 소개된 생텍쥐페리에 대한 짧은 내용을 보면서 저는 그런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가 쓴 어른들을 위한 동화 “어린왕자”야 말로 생텍쥐페리 자신의 자서전을 담고 있구나“ 그의 죽음도 참 신기합니다. 시신을 찾을 수 없었거든요. 정찰비행 중 행방불명된 그의 최후와 어린왕자에서 어린왕자가 지구별을 떠나는 대목과 너무 흡사했습니다. 갑자기 세상에 나타났다 갑자기 사라진 어린왕자, 바로 그가 생텍쥐베리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그가 살았던 시기가 인류가 생존한 이후 가장 무섭고 끔찍한 두 번의 전쟁을 경험하고 있을 때임을 감안한다면 어린왕자는 단순한 동화가 아니라 인간성에 호소하고 있는 깊은 철학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순수한 영혼을 지니고 있으며 소행성 B612에서 살고 있는 어린왕자는 사실 우리의 마음 안에 있다 떠나간 우리의 내면의 아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어린왕자에서 어른이라는 단어를 성인에 해당하는 Adult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grown-up people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이미 다 자라버린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새로울 것이 없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어린왕자라는 책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상관계이론가를 꼽으라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영국의 소아과의사였으며 정신과의사였던 도널드 위니캇(Donald Winnicott)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위니캇은 그의 삶에서 6만 건이라는 엄청난 임상 케이스를 갖고 있는 의사로서 수많은 아이와 돌보는 대상들(엄마, 할머니, 보모 등)을 관찰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정립한 인물입니다. 위니캇의 이론 중에서 어린왕자를 분석하기에 가장 유용한 이론은 바로 play theory(놀이이론)입니다.

위니캇은 건강한 삶을 “놀이하는 삶”이라 보았습니다. 여기서 놀이란 어떤 놀이기구를 이용해 노는 인위적인 놀이를 말함이 아닙니다. 사람의 본능 안에는 자신의 에너지를 펼쳐 보이고 싶은 자연스러운 욕구가 담겨있는데 이러한 에너지를 마음껏 펼치며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삶을 위니캇은 놀이하는 삶이라 보았습니다. 비틀스의 유명한 노래 제목처럼 “Let it Be"의 삶입니다. 자연스러운 삶이 아이다운 삶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자연스러운 삶을 너무 잊고 살아갑니다. 생텍쥐페리는 어린왕자의 눈을 통해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늘 생각이 많고 이성적이며 명령에 짓눌려 살아야 하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 위선과 허영과 이중성을 여러 행성을 여행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고발하고 있습니다.

과연 어린이다운 삶이란 무엇일까요? 대상관계이론은 크게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조건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첫째 의존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아이에게는 반드시 돌보는 대상이 필요합니다. 위니캇은 그런 존재를 Good enough mother이라 했고 코헛은 selfobject라 불렀으며 볼비는 secure base라 불렀습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이 세상을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미숙한 의존에서 성숙한 의존으로의 변화가 있을 뿐입니다. 의존해야 할 대상이 꼭 필요합니다. 어린왕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여우처럼 말입니다.

  둘째, 아이들은 환상을 갖고 살아갑니다. 일종의 동화의 세계를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세상이 지동설을 믿지만 사실 모든 어린아이들은 심리적으로 천동설을 삽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아이들은 모든 것을 자기라는 주관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눈이 와도 “하나님이 나를 위해 눈을 내려 주시는 구나” 라고  생각하고 부모가 부부 싸움을 해도 “내가 무얼 잘못하여 저렇게 엄마 아빠가 싸우고 이혼 한다”고 생각하고 산타 크로스가 가짜 수염을 붙이고 나타나도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철저히 환상적 주관적 세계를 삽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영민해진 아이들은 현실을 직시합니다.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가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작은 지구가 돌아간다는 평범한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객관적 세계를 배우게 되는 겁니다. 바로 이것! 아이들이 마음껏 주관성을 갖고 이 세상과 삶을 놀이터로 생각하며 신명나게 자신의 환상을 펼칠 수 있다면 그 아이는 자신의 우주 안에서 영웅이 됩니다. 그 우주 안에서 나오는 역설적 세계가 우리의 마음에 꿈을 주고 감동을 주는 소설, 만화, 영화, 음악, 예술, 종교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우주와 환상과 주관성과 놀이터가 있어야 할 적에 그것들을 빼앗긴 아이들은 삶에 대해 환상대신 환멸을 느끼고 삶을 놀이가 아닌 눈치 봄으로 어떤 규격에 끊임없이 자신을 맞추려 합니다. 삶은 사라지고 잔머리 굴리는 생존만이 남게 된다는 겁니다. 그것을 저는 내면의 감옥이라 부릅니다. 신경증이라는 감옥, 우울증이라는 감옥, 강박증이라는 감옥..결국 자신이 만든 감옥에 갇힌 꼴이 됩니다. 어린왕자가 방문했던 소행성의 이상한 어른들은 모두 다 그렇게 자신의 감옥에 갇혀 사는 사람들의 군상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면의 자유가 없으면 외적인 자유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저는 상담의 궁극적 목적이 놀이터 찾아주기, 신명나게 놀게 해 주기, 마음껏 자유롭게 소리치고 퇴행해보기라 생각합니다.

  셋째, 아이다움의 특성은 새로운 것에 대해 마음을 열고 작은 것에도 환호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아이들은 무엇을 봐도 그냥 보지 않고 “와!~”하는 환호를 하며 바라봅니다. 무덤덤하지 않습니다. 지구별에 불시착한 어린왕자가 지구별의 모습에 신기함을 갖고 바라보듯 그런 눈망울을 갖고 사는 어린아이의 눈을 우리는 까마득히 잊고 삽니다. 아름다운 상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잃은 사람은 다 자란 어른이 되고 맙니다. 새로울 것도 없고 놀라울 것도 없는 모든 것이 뻔하고 지루한 것이 되고 맙니다.

저는 어린왕자를 보면서 그 어린왕자는 우리 내면의 잃어버린 아이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어린왕자가 아니셨을까 하는 마음을 품었습니다..예수 그리스도를 어린왕자로 바라본다면 그의 삶이 달라보이리라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든 어린아이 같지 아니하면(누구든 성숙한 어른 같지 아니하고 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하신 말씀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하게 하는 소설 어린왕자였습니다. ------------
첨부파일
카테고리